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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혈증약으로 변이암 잡은 의사과학자 "고통 없는 항암치료 만들 것"
- 등록일 : 21-08-30
- 조회수 : 3295

김인산 단장팀, 스타틴으로 변이 암 면역적 치료 세계 첫 보고
"항암치료, 인간답게 사는데 목적 둬야"
"치료제가 환자에게 쓰이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시판 중인 고지혈증약으로 변이 암 면역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암 조직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찾아 환자에게 쓰이는 치료제로 개발하겠습니다."(복잡계적응항암전략연구단 김인산 단장)
연구에 몰입하기 위해 의사에서 연구자로 제2의 인생을 택했던 KIST 복잡계적응항암전략연구단 김인산 단장이 고지혈증약 스타틴을 KRAS 변이 암 면역치료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을 세계 최초로 보고했다.
스타틴은 이미 시판돼 안정성이 인정된 치료제로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독하다 알려진 양약(洋藥)과 달리 의사들도 처방받아 먹을 정도로 안정적이어서 '양약의 보약'이라 불린다. 스타틴의 새로운 발견은 고가의 항암면역치료제의 가격을 낮출 것으로 보인다. 또 새로운 항암 면역치료 패러다임을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
스타틴효능 알았지만...누구도 풀지 못한 이유 밝히다
항암치료는 1세대 '화학 항암제' 2세대 '표적항암제'를 거쳐 3세대 '항암 면역치료'로 발전했다. 항암 면역치료는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활용해 암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정상 세포 손상 없이 항암효과를 지속시켜주어 치료의 경과가 좋고 부작용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암세포의 복잡성과 잦은 변이 등으로 항암 면역치료에서 효과를 보이는 환자는 30% 미만이다. 치료제 비용도 억대가 넘어 사회적 부담도 크다. 모든 암에 효과를 보이는 것도 아니다. 전체 암에서 4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KRAS 변이 암은 1~3세대 치료법을 통틀어 효과를 크게 보지 못해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상태다. KRAS 암세포는 폐암, 대장암, 췌장암 등 치사율이 높은 암종에서 많이 나타나 치사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의사 출신인 김 단장은 환자들이 부작용이 두려워 항암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모습을 봐왔다. 고통 없이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연구에 몰입하게 된 이유다.
그는 항암 면역치료의 단점 개선을 위해 고지혈증약 스타틴에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스타틴은 예전부터 항암효과에 좋다는 연구가 여러 번 보고됐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이 없었다.
김 단장은 콜레스테롤을 낮추고, 세포 증식 관련 신호를 조절 억제하는 스타틴의 특징과 KRAS 돌연변이 신호 억제 특징이 KRAS 변이 암의 생존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무엇보다 스타틴이 단순히 KRAS 암세포 죽음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항암에 대한 면역시스템을 활성화하면서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죽일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김 단장은 종양 동물 모델과 환자 유래 암세포에 스타틴을 처리하는 등 여러 실험을 했다. 그 결과 스타틴이 KRAS 변이 암을 선택적으로 죽이는 것을 확인했다. 또 스타틴이 기존 항암 면역치료에 저항성을 보였던 암 면역 환경을 변화시켜 항암 면역치료 효능을 더 많이 유도하는 것을 밝혔다.
김 단장은 암 종류에 상관없이 항암제와 스타틴을 함께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과거 항암제는 흑색종, 대장암 등 특정 환자를 대상으로 한 환자군을 모아 임상을 추진해 야 FDA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의학 발전으로 암종류와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범위가 늘어나고 있다"며 "스타틴 역시 KRAS 암세포를 가진 환자라면 누구나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항암치료, 인간답게 사는데 목적 둬야
김 단장팀은 스타틴 기반 약물재창출 전략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여전히 과제는 남아있다. 암 치료를 위한 최적의 용법으로 찾고 제형을 개발해야 한다.
그는 "경구용 항암치료가 많지 않아 대부분 환자는 내원해 병상에 누워 치료를 받는데 시간을 많이 쓴다"며 "스타틴은 경구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큰 장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현재 흡수용량으로는 항암치료에 쓸 수 없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단장은 흡수용량을 늘리기 위한 연구 디자인을 대략 마치고 특허도 출원했다. 남은 것은 추가 연구와 기업과 협업이다. 하지만 스타틴이 워낙 저렴한데다 약물재창출이다 보니 약가(의약품 적용가격)가 낮게 책정될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이 뛰어들어 연구하기 어려운 상황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암으로 사망하는 환자는 매년 증가 추세다. 2019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3대 사인은 암, 심장질환, 폐렴으로, 전체 사망자의 27.5%가 암으로 사망했다. 암 환자가 늘어날수록 사회적 비용도 늘어나는 만큼 꾸준한 투자와 연구가 필요하지만, 투자 대비 수익이 불투명한 사업에 뛰어들지 못하는 기업을 탓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지만 김 단장은 연구에 머물지 않고 환자에게 쓰일 수 있는 길을 계속 찾을 계획이다.
그는 "과거 불치병으로 불렸던 암이 의학 발전으로 극복할 수 있는 병이 됐지만, 여전히 죽지 않을 만큼 최대용량의 약을 쓴다고 말할 정도로 치료가 어려운 병"이라며 "암은 더는 피할 수 없는 병이다. 앞으로의 항암치료는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 뿐 아니라 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데도 목적을 두어야 한다. 그중 하나가 경구용 항암면역치료가 될 것"이라며 연구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삼성서울병원 조용범 교수 연구팀과 공동연구했으며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Journal for immunotherapy of cancer’에 게재됐다.